2014년 6월 17일 화요일

개발자에게 재택 근무가 필요한 이유

과거 서울 남부의 경기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채용할 때였다. 서울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경기도에 있는 곳인데도 많은 지원자들이 거리상의 문제로 지원을 포기 했고, 특히 서울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인터뷰 시에도 출퇴근의 어려움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 

얼마 전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서울에서 판교로 사옥을 이전했다. 그런데 서울 북부나 일산 등지에 사는 직원들을 주축으로 많은 개발자들이 회사 이전과 동시에 퇴사를 했다. 특히 몇몇 핵심 개발자들의 퇴사는 회사의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회사의 근무형태는 농업사회에서 보여주는 전통적인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근무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을 하고 야근까지 하면서 상사에게 오랜 시간 열심히 땅을 파는 모습을 보여줘야 ‘열심히 일을 하고 있구나’ 하며 안심을 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이 지식 산업이 아닌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간 딱딱 맞춰서 사무실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시스템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면 어떨까? 거리의 제약은 수십배로 커진다. 많은 개발자들은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하기도 하지만 재택 근무 형태로 일하는 개발자도 많다. 

재택 근무가 가능하면 회사에 꼭 필요한 개발자를 거리의 제약 없이 채용 할 수 있다. 같은 재택근무라도 상황에 따라서 근무 조건은 매우 다양하다. 일주일에 한번씩 출근을 하기도 하고 아예 원격으로 일하는 개발자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장이 너무 멀어서 출퇴근에 2, 3시간씩 걸려도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사를 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개발자 채용에 거리 제약이 있고 회사에 꼭 필요한 개발자인데도 채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재택근무가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는 옆에 앉아 같이 일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같이 모여서 일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필자는 여러 회사에서 강연이나 세미나를 할 때 종종 “여러분이 모두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원격으로 일하면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100%의 회사들이 일이 전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를 한다. 개발자들은 허무맹랑한 질문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이는 단지 재택근무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문제는 아니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회사는 문화적으로 프로세스적으로 개선할 점이 많은 회사다. 회사가 개발에 필요한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고 공유와 문서화가 잘 되어 있으면 재택근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집에서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회사에서는 개발자들이 수시로 물어보고 의논을 하고 회의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환경을 보면 회의가 너무 많고 공유와 문서화가 잘 안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문서나 시스템으로 대부분의 내용은 공유하고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시스템을 통해서 해야 한다. 회의도 스카이프등을 이용해서 원격으로 할 수 있다. 

꼭 대면회의가 필요한 경우에 회사를 나오면 된다. 이런 환경이 갖춰지면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재택근무를 하면 개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회사 관계자도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회사에 있으면 열심히 일하는지 알 수 있는가? 시스템, 문화와 프로세스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개발 성과와 결과물이 시스템에 제대로 남고 동료 검토를 통해서 동료들이 서로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 다 알고 있다. 

옆에서 일하나 멀리서 일하나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옆에서 일해도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고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당장 이런 성숙된 문화와 효율적인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재택근무를 추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려하고 있는 모든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재택근무는 거리의 제약을 뛰어넘어 뛰어난 개발자를 채용할 수 있게도 할 뿐만 아니라 가정에 사정이 있는 개발자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 

가정 사정상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회사에 10시부터 3시까지 밖에 있지 못하는 뛰어난 개발자가 있다고 하자. 이렇게 일하는 것을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 누구는 일주일에 이틀밖에 회사에 나올 수 없다고 하자. 이런 개발자가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채용해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재택근무는 그 자체로도 필요하고 회사의 문화나 프로세스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볼 수도 있다. 필자는 회사에서는 야근을 별로 하지 않고 야간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회사의 시스템에 붙어서 이슈를 확인하고 의논을 하며 코드리뷰를 하는 등스스로 찾아서 일을 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가족과 지낼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일을 할 수 있다. 주말에도 굳이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원격으로 쉽게 일할 수 있다. 시간, 공간적인 제약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개발자들의 재택근무가 가능하지 생각해보자. 현재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이유가 회사에서 모여서 일할 때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재택근무가 가능한 시스템이 회사의 개발 문화 성숙도를 한층 높여줄 것이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글입니다.

댓글 11개:

  1.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공유와 문서화의 힘이 언급될 때 많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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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나름 제 상황과 비교하면서 읽게 되네요.

    글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계속 남아있던 한가지 질문은 '어떻게 믿지'입니다.
    물론 이 질문도 받아보셨겠지만 신뢰에 대한 얘기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지방 중소기업은 인력 구하기가 힘듭니다. 좋은 인재와 같이 일한다면 좋지요.
    허나 그 사람의 실력이 어떻든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재택근무로 채용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름 깊은 고민입니다. 글쓴이님의 글에 해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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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맞는 말입니다..
    다만 사무실에 나오면 열심히 일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리에 엉덩이 깔고 잘 있고 윗사람의 되도 않는 질문에 굽신대면 일을 잘 열심히 한다고 생각들 하죠 ㅎㅎ
    이런 좀 안좋은 문화가 바뀌고 문서화와 공유라는 문화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진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유의 끝에는 고용주가 고용한 사람을 그저 나의 이득을 위해 부리는 사람이라는 인식만 갖고 있지 같이 달려나간다는 공동체(?)의식 같은게 없는 상명하복의 갑질 마인드가 제일 근본이라고 생각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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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단순히 믿음의 문제는 아니고 시스템, 프로세스, 문화가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일하는 시간으로 일하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고 해야할 일이 명확하고 결과로 측정되며 해야할 일은 시스템에 모두 기록되고 모든 사람이 온라인으로 일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이런 형태의 업무가 자연스러워지려면 상당한 시간 투자와 의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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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사실 재택근무도 근무지만, 탄력 근무제가 먼저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의 정립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이며 또, 시간이 아닌 TASK로 관리되는 초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봤을 때 회의적인 것은, 특히 SI/SM의 을 관계일때에는...어느 고객사가 좋아할것이며 어느 고객이 이해할것인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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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기본적으로 재택근무에 관한 필요성은 이해합니다. 다만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재택근무는 재택근무자에 의해서 저작된 회사 자산에 관한 보안 취약성에 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대안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재택근무와 관련해서 기업 측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그것인데 여기에 대한 언급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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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김익환님의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말하다에 보면 이런 말이 있더군요. 기본적으로 실리콘밸리는 정보 유출에 대한 법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개인이 정보유출을 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구요. 우리나라도 그런 기반 법제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소스코드는 보안에 힘 쓸 정도로..대단하지도 않다고 하는 이야기도 하시더군요 ㅋㅋ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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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소스 코드가 보안에 힘쓸 정도로 대단한지...에 관한 이야기는 보안이라는 주제와는 다른 주제입니다. 이 부분은 별도로 다루는 것으로 하고... 기업의 보안 및 자산관리에 관한 시스템화 대책은 재택 근무 이전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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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보안은 별도의 광범위한 주제라서 간단히 얘기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국방부 프로젝트를 회사는 관련 자료를 집에도 가져갈 수도 없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도 없어서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됩니다.

    매우 개방적인 회사도 보안은 철저해야 합니다. 소스코드야 그렇다 쳐도 회사의 전략이나 수많은 문서들은 대부분이 공개되어서는 안됩니다. 시스템적으로 VPN을 사용하거나 철저한 회사는 요즘 가상화 솔루션을 쓰기도 하지만 시스템으로 모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보안 및 저작권에 대한 교육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형사 사건이 되는데 그 심각성을 잘 인식시켜야 합니다.

    회사마다 필요한 보안의 수준이 달라서 획일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회사에 알맞게 잘 대비를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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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글세요. 일부 답변의 접근 방식은 좀 잘못된게 아닌지 싶네요. 재택근무라는 주제의 논의가 진행되는한 보안이라는 키워드는 별도의 주제가 아닌 재택근무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방 분야고 어떤 분야고를 떠나서... 어떠한 기업주가 되었건, 자신이 급여를 지급해서 개발한 산출물이 직원들의 재택에 있는 개인 PC에 저장되고 있는 상황을 과연 기업주가 원할까요? 기업 보안의 수준이 어떠하든 간에 해당 기업주는 같은 요구를 할 것입니다. 회사 직원이 아닌 프리렌서라면 다른 조건의 계약을 하겠지만, 회사에 고용된 직원이 보안을 무시하면서까지 재택근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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