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일 토요일

SW개발과 빨리빨리 문화의 저주(개발문화 시리즈3)

이번에 다룰 개발문화 이야기는 '빨리빨리 문화'다. 

일을 빨리 하자는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더 짧은 시간에 똑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산업분야에서 '빨리빨리 문화'의 혜택을 입었고, 관련 노하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빨리빨리 문화'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독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시제품은 빨리 만드는데 본제품을 완성하는데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며 품질도 떨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유지보수가 무척 어려워져서 제품을 포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상황을 수습하지 못해, 회사의 종말로 이어질 때도 있다. 

유독 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  원인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는 훨씬 복잡하다. 다른 분야에는 미안하지만 소프트웨어는 가장 복잡한 지식산업이다. 빨리 개발해야 한다고 열심히 코딩부터 시작해서 으쌰으쌰 개발하면 아키텍처는 뒤죽박죽 되고 개발 기간도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차근차근 모든 설계서를 만들고 설계서대로 개발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웬만한 프로젝트를 마무리는데 10년쯤 걸릴 것이다. 절묘한 절충이 가장 어렵다. 

둘째, 소프트웨어는 예술이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예술과 비슷하다. 예술은 재촉한하거나 야근을 한다고 해서 빨리,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요구사항과 비즈니스 전략 등을 종합하여 가장 적합한 아키텍처를 만드는데 시간이 부족하면 부실한 아키텍처가 되고 개발에 들어갔거나 유지보수시 이를 바꾸려면 비용은 100배, 1000배가 더 든다. 

셋째, 소프트웨어는 생명체와 같다. 소프트웨어는 건축에서 개념을 가져온 것도 많고 실제 비슷한 것도 많다. 하지만 빌딩은 일단 완공되면 100년동안 기본 구조가 거의 안바뀌지만 소프트웨어는 보통 출시되도 계속 성장한다. 소프트웨어는 출시 후부터 초기 개발비용보다 약 4배의 돈이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키텍처가 부실하다면 4배가 아니라 40배의 비용을 더 들이고도 업그레이드 및 유지보수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럼, '빨리빨리 문화'가 문제니 차근차근 천천히 개발을 해야 할까? 그건 전혀 아니다. 수많은 성공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천천히 개발을 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최대 미덕은 소프트웨어를 빨리 개발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조금이라도 느리게 하는 모든 방법론, 규칙, 제약, 프로세스는 잘못된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오히려 더 느리게 하고 다른  문제들도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유발한다. 

-프로젝트 지식, 정보, 자료 공유의 부재 
-부실하고 확장성이 떨어지는 아키텍처 
-특정 개발자에게 종속됨 
-수많은 중복된 코드 
-개발자의 인간다운 삶과 성장 포기 
-점점 증가하는 유지보수 비용 

이런 현상은 개발 방법론과는 상관없이 벌어진다. SRS(Software requirements specification) 형태로 스펙을 제대로 쓰던 TDD를 하던 이는 모두 소프트웨어를 빨리 개발하기 위한 방법이다. 문서작성, 코드리뷰, 프로세스 등 모든 것은 소프트웨어를 빨리 개발하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개발을 느리게 하니 그냥 개발하자고 하는 것은 완전히 착각이다. 

물론 이런 방법들이 소프트웨어를 빨리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려면 뛰어난 아키텍트도 필요하고 회사의 개발문화 성숙도도 높아야 한다. 

빌딩을 빨리 만들겠다고 벽돌부터 서둘러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초공사와 설계가 잘되어야 어떤 방식으로든 빌딩을 빨리 만들 수 있다. 소프트웨어도 견고하고 확장성이 있는 아키텍처가 있어야 요구사항 변경에 대응이 잘되고 협업이 용이하며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사실 무리한 일정 압박이 아키텍처에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개발자 대부분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빨리빨리 문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은 따로 있다. 바로 경영자와 고객이다. 

대부분의 경영자에게 단기 성과는 생존 문제다. 회사 오너라면 조금 낫지만 많은 경영자들은 2년, 3년 단기 계약을 한다. 그 기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않으면 재계약이 어려워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깊은 이해도 부족하지만 미래를 고려할 시간은 더욱 없다. 6개월, 1년안에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영자는 영업이 가장 중요하고 단기 매출에 집착하며 아키텍처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제대로 된 CTO가 있다면 CEO가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CTO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고객도 문제다. 우리나라 고객들은 이중적이다. 우리나라 개발사에는 버그를 당장 내일 고쳐줄 것을 요구하지만 글로벌 회사는 6개월 후에 고쳐주는 것을 고마워한다. 글로벌 회사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빨리 고쳐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객들은 개발자가 고객 회사에 들어와서 일해주기를 원한다. 스펙을 제대로 정리하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개발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옆에 앉혀놓고 종을 부리듯이 개발하기를 원한다. 

국내에서는 그런 고객의 입맛에 맞춰줘서 성공한 사례가 꽤 있다. 이런 문화는 국내 시장의 진입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1위에 등극했지만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데는 큰 문제가 있다. 

개발문화가 비효율적이고 아키텍트의 역량이 떨어져서 세계 시장에서 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외국 고객은 어떨까?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버그를 내일 고쳐 준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한다. 특히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라면 이런 개발사의 신속한 대응은 오히려 개발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개발사끼리는 이러한 고객 요구사항에 서로 잘 맞춰주겠다고 진흙탕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힘들어지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개발자에게 돌아간다. 개발자는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 개발 환경에서는 개발자로서 성장하기도 힘들어진다. 

'빨리빨리 문화'가 바뀌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고객도, 경영자도, 개발자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는가?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은 내가 바뀌는 것이다. 내가 바뀌는 것의 시작은 깨닫는 것이다. 지금은 당장 나만 바뀌면 나만 손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바뀌고 동료가 바뀌지 않으면 '빨리빨리 문화'는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아키텍처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키텍트를 키우고 영업과 개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노력하고 급하게보다는 제대로 빨리 개발하기 위한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기반시스템, 방법론, 프로세스 모두 적절히 필요하다. 다른 여러가지 개발문화의 성숙도를 높여가는 것도 '빨리빨리 문화'를 고치는데 도움이 된다. 결국 우리가 바꿔 나가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슈와 비슷하지만 개발문화 성숙도 문제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문화란 글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하고 경험자에게 배워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익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글은 ZDNet Korea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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